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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IMF 외환위기의 신호탄, 한보그룹

PFe 2018. 2. 21. 16:14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건설한 것으로 유명한 한보그룹은 1974년에 설립되서 1997년에 파산한 기업이야. 망하기 1년 전 매출액이 14위일 정도로 큰 회사였어

창업주 정태수(1923년 8월 13일~)


창업주인 정태수는 경남 진주 출생으로 여동생이 있으며 진주농고를 졸업...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초졸이야. 어릴 때 집이 너무 가난해서 일찍부터 농사일을 시작했다고 해. 1949년에는 김순자씨를 만나 결혼해. 그래도 머리는 좋아서 29살때인 1951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부산경남지역에서 평범한 세무공무원으로 일을 해. 그러다 부인과 사별하고 서울로 상경하는데 23년동안 세무공무원 일을 하다 정태수 본인이 세무공무원 생활이 싫증이 나기도 했고 또 정태수는 평소에 백운학이라는 역술가를 찾아가서 점을 많이 봤는데 그 사람이 정태수한테 돌,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하면 잘 될 거라는 말을 해 주자 이를 마음 속에 새기고 산을 자주 타며 특이하게 생긴 모양의 돌이 있으면 집으로 가져오곤 했는데 이를 보고 자신이 할 건 광업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곤 곧바로 공무원을 때려치고(1974)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어서 강원도에 광산을 하나 사들이고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해. 기업을 설립할 때 둘째 부인인 이수정씨(1938~1983, 1966년 결혼)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어. 광업이 성과를 거두자 정태수는 주택사업에 뛰어드는데 1975년에 구로동에 영화아파트를 완공시키고

재건축 하면서 지금은 사라진 영화아파트. 2005년 사진임


그러다 한보를 크게 성장시키는 계기가 하나 생기는데 정태수가 강남 대치동 허허벌판 7만평을 매입해 당시 전국 최대 규모였던 4424세대 규모의 은마아파트를 건설해(당시 동양 최대였다는 말도 있음) 1979년에 완공하지. 정태수와 한보는 은마아파트 건설에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처음에는 분양도 안 되고 정부 규제도 있고 해서 정말 상황이 안 좋았다고 해. 실제로 79년 가을에는 도산 직전까지 갔다고 함. 그런데 이듬해 2차 석유파동 여파 때문에 부동산이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으면서 단 3주만에 분양을 완료하고 한보그룹은 2000억, 지금 가치로 3조원의 큰 돈을 손에 거머쥐게 돼

1979년의 은마아파트. 확실히 주변 풍경이 지금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 안내책자. 마지막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조감도에 아파트 주변에 논밭이 그려져있다ㅋ


아, 그리고 은마아파트 바로 옆에 은마상가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한보는 본사가 이 상가 건물 3층에 있었다. 대기업 본사가 상가건물에 있었다는 게 특이하지? 정태수는 은마아파트 완공 이후에도 이 쪽 부지를 돈이 되는 땅이라며 귀하게 여겼다고 함. 한보가 파산한지 20년이 지난 현재에는 이 동네를 가도 한보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


참고로 한보가 본사를 상가 건물에 둔 것이나 정태수가 원래 이름이 정태준인데 정태수로 개명한 것, 그리고 한보 몰락의 원인인 철강업에 손 댄 것 등이 역술가 말을 따라서 그렇게 됐다는 말이 있어. 정태수는 평소 역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고 해.

어쨌든 정태수는 기세를 몰아 79년에는 초석건설이라는 회사를 인수해 사명은 한보종합건설로 변경하고 요르단 등 해외로도 진출해. 이 후 주택, 상사, 종합건설, 목재, 탄광, 골프, 금융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히지. 1983년 3월에 부인 이수정씨가 암으로 사망하는데 그 때 6개월에 걸쳐서 부인 묘를 치장했다고 해. 부인이 회사를 설립할 때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고(자기 돈을 털어넣었음. 공동창업자) 자금난이 생기면 본인이 직접 사채시장을 돌아다녀 자금을 구해 왔으며 은마아파트 건설 때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인부들 식사를 날랐다고 하니 정태수에게 둘째 부인이 어떤 존재인지는 뭐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진의종 국무총리를 만나는 정태수 회장(1984년)


1984년에는 부산에 있는 금호그룹 제철소를 인수했는데 당시 팔지 못한 철근이 잔뜩 쌓여있었어. 근데 때마침 일본에서 수많은 철근 주문이 들어와서 정태수가 제철소를 인수하자마자 그렇게 많이 쌓여있던 철근을 몇 주 만에 다 팔아버렸다고해. 83년 효성그룹의 한인골프장(현 태광CC) 인수, 84년 금호철강 인수, 86년 종로1가 신신백화점과 화신백화점, 강릉 간호전문대(현 영동대학) 인수 등도 이 때 이루어졌지.


정태수는 로비의 귀재였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학벌도 변변찮던 정태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맥이 중요했고 그래서 고위공무원들과 정치인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뿌렸어. 거기다 입도 무거워서 자물쇠라는 별명도 생겼지.

사실 한보는 1986년부터 회사 상황이 점점 힘들어졌었고 1991년에는 그 유명한 수서사건이 터져. 수서사건이란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의 강남 수서 대치동 택지개발지구를 특정 조합에게 유리하게 분양한 사건인데 여기에 한보그룹이 깊게 개입했었고 곧이어 정태수가 여러 고위공무원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렸다는 사실이 밝혀져. 결국 여론에 못 이긴 노태우 대통령도 검찰특별수사를 지시했고 장병조 청와대비서관, 정태수 회장, 오용운 의원 등 7명이 구속돼

수서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대


하지만 정태수는 5개월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고 정부의 비호 아래 계속 활발한 활동을 해.

80년대 중반부터 철강업에 큰 관심을 가진 정태수는 1987년에 충남 당진에 대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고(그룹 해체의 원흉...) 1989년 12월부터 제철소 건설에 착공해. 100만평 규모에 연 900만톤의 철강을 생산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 하지만 너무 준비가 안 되고 무리한 사업이었어. 실제로 1989년 당시 박태준 포스코 회장이 제철소 건설을 거듭 말렸다고 해. 정태수 회장이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태준 회장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는데 좀 얘기를 하다 보니까 박태준 회장은 정태수가 철강에 대해 공무를 너무 안 했음을 깨닫고 사업을 만류했다고 해. 만약 실패하면 국가 경제에 큰 무리를 준다는 충고도 하면서(실제로 그렇게 됐지...)

만악의 근원인 당진제철소. 지금의 현대제철소

제철소 준공식(1995년 6월 23일)


제철소 공사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게 문제였어. 당초 한보는 2조 8000억 정도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 2배가 넘는 5조 7000억이나 건설비가 투입됐고 그 중 대부분이 외채였어. 이 때문에 한보는 재무 상태가 아주 나빠졌고 뒤늦게 금융기관이 대출금 회수에 나서면서 한보는 1997년 1월 23일 부도 처리돼. 

정태수 본인이 말하길 한보는 96년에 러시아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권을 보유한 한 러시아 회사 지분 27%를 사들였으나 한보 사태가 터진 후 영국 회사한테 300억 정도에 다 팔았는데 그 가스전 매장량이 훗날 10억t 정도로 알려지면서 그 회사 주가가 폭등했다고 해. 정태수 본인이 말하길 만약 정부가 자신을 믿고 좀 더 기다려줬다면 그 300억이 2조가 되서 돌아와 회사도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한보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을 거라면서

어쨌든 당시 계열사 26개, 1996년 기준 매출액 14위의 한보는 그렇게 사라졌고 그리고 그 후폭풍은 뭐...


외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한보 부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보 부도가 대한민국 경제에 큰 무리를 준 건 사실이지


하지만 아직 안 끝났다. 정태수에게 그 동안 거액의 뇌물을 받고 편의를 봐주었던 고위 공무원, 정치인들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1997년 4월 7일 청문회가 열려. 당시 정태수는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기 때문에 사상 최초로 구치소에서 청문회가 열리는데 이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전무후무한 구치소 청문회였어


청문회에서 정태수는 시종일관 모른다, 재판 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라고만 반복했고 "자금이라는 건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어떻게 압니까"라는 발언으로 큰 공분을 샀어

하지만 계속 버티던 정태수도 결국 입을 열었고 그렇게 정태수에게 뇌물을 받은 정태수 리스트 33인의 이름이 공개되는데 그 중에는 무려 현직 대통령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도 있었고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자식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져(김현철은 99년 사면)

그 외에도 김기섭 안기부 차장, 황병태, 정대철, 권노갑 의원, 홍인길 청와대 정무수석, 김우석 내무부장관, 문정수 부산시장 등이 이 리스트에 포함됐고 대거 철창신세를 졌으며

1995년 한보에게 불법 대출을 해 준 제일은행 박석태 상무는 97년 4월 28일 자택에서 자살하기도 했지.

정태수 본인도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수감되다 2002년 특별사면됐고 2005년에는 강원영동대학 교비 72억원을 빼돌리다 적발돼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하고 현재까지 해외도피중이야. 4년 전 sbs가 취재했을 당시에는 키르기스스탄에 머물고 있다고 알려졌었어. 자식들도 차남 빼고는 하나같이 뇌물, 불법 지원, 비자금 문제 등에 연루됐는데 4남인 정한근씨는 1998년 중국으로 밀항한 후 현재까지도 해외도피생활중이야. 최근에는 미국 la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정태수는 2225억원의 세금을 체납해 현재까지도 세금 체납 부동의 1위야(3위가 정한근인가 그럼)

2004년의 정태수


정태수 본인은 오랫동안 재기를 꿈꿨지만 결국은 실패했어. 2004년에는 그렇게나 애증의 존재인 당진제철소를 인수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지.

정태수는 역술과 로비로 성공해 이 둘로 망했어. 죄수복을 입고 청문회를 하는 상황에서도 직원들을 머슴이라 칭하고 엄청난 비자금을 빼돌려(최대 7100억 정도라는 말도 있음. 일단 최소 수백억인 건 확정) 지금도 해외에서 잘 산다는 걸 보면 23년만에 망한 한보그룹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95살인 지금도 살아는 있다는데 꽤 정정했다가 최근 들어서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해. 손자 손녀가 영국에서 1년에 카드값으로만 2억 8000만원어치 긁었다는 걸 보면 지금도 잘 살기는 잘 사는 모양